온기의 향
어두운 방에는 기묘한 마력이 존재한다. 부드러운 어둠이 공간을 가득 채운 곳에 촛불 하나 밝힌 채로 가만히 앉아있으면, 공간의 감각이 사라진다. 더운지, 추운지, 바람이 부는지, 그저 고여 멈췄는지. 육체와 물체의 실존이 의미를 잃고, 오롯하게 지각과 감각이 세상을 규정한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는 늘 그런 기분이다.
달이 휘영청 밝아도 이 방은 늘 희미한 어둠을 품는다. ‘어디가’ 어떻게 어둡냐고 물어보면 마땅히 답할 말은 없다. 그저, 공기에 떠도는 안개 같은, 미묘한 어둠이 늘 이 방에 머무른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당신과 함께 있을 때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서 구태여 의식의 위로 끌어올리지 않는 무언가. 시야를 좁히고, 숨을 길게 빼내고, 폐부를 가볍게 만드는 무엇이 이 방에는 존재한다.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느낌, 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가려나.
그 느릿한 세계 속에서 당신이 하는 일은 늘 비슷하다. 수정구를 들여다보며 반짝이는 빛 안쪽의 무언가를 살피거나, 타로 카드를 섞고 늘어놓으며 권태롭게 미래를 점친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저런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방 안에서 만년 미래만 들여다보면 뭐가 바뀌는가? 미래라는 건 현재와 과거를 이어 쭉 그어낸 선의 궤적이다. 현재의 선을 덧그리지 않고 미래만 열어보는 건, 손쉽게 재미를 취하고 현재를 무시하는 일종의 방편일 뿐이다. 그러나 뭐, 이건 내 생각이고. 한참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추정이다. 생긴 건 그리 차이 나지 않지만, 분위기상) 에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소리치는 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때때로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고. 그러니 나는 당신에게 그런 짓 그만하고 산책하고 사람과 대화나 하라고 말하는 대신,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거는 쪽을 선호했다.
“클라비스님, 뭘 보세요?”
수정구 너머는 내게 보이지 않는다. 보려고 하면 뭐, 볼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건 별로 취향이 아니라고 앞서 말했다. 가끔이면 몰라도, 매번 이렇게 수정구를 들여다보는 건 좋지 않다. 그러니 내가 보는 건 빛 안의 광경이 아니다. 당신의 손. 크고, 말랐고, 뼈마디가 두드러지는 손. 나의 것과 달라서, 당신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보여주는 유기물.
“⋯⋯딱히. 무엇도⋯⋯.” ”지금 수정구 안에 뭔가 영상이 나오는 중인데도요?”
“큰 의미는 없다. 수정구가 제멋대로 비출 뿐이야⋯⋯.”
“전원 버튼 없나요? 끄면 되잖아요.”
아, 또 이 표정. 뭔가 아주 야만적인 짓을 했는데, 내치기엔 너무 멍청한 생명체를 보는 표정. 아니, 뭐, 실제로 표정이 바뀐 건 아니지만, 분위기가 그렇다. 나는 어쩐지 겸연쩍어져서, 그냥 웃었다. 아하하, 하는 소리를 만들어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도한다.
“네, 네, 잘못했어요.”
그러면 당신은 한숨을 내쉰다.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그러면 숨결은 나의 머리카락에 닿아 감촉을 남기고, 나는 의아하게 당신을 올려다본다. 물성을 모두 제거하는 이 방에서, 촉각은 기이한 실감을 준다. 우리 모두 인간이고, 육체와 질량을 가지고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 이 순간은 내 머릿속의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
“음⋯⋯. 우유라도 드실래요? 제가 데워 올까요?”
당신의 몸에서는 언제나 온기의 향이 난다. 무어라 딱 집어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몸 근처에서 데워진 공기가 내는 특유의 감촉이. 나는 언제나 당신을 떠올릴 때 이 감촉을 떠올린다. 거의 품에 파고들어서 올려다볼 때의 감각. 온몸이 당신의 체온에 파묻히는, 부드러운 느낌. 당신은 늘 그렇다. 이 방의 희미한 어둠 속에서는, 무엇도 내치지 않는다.
“꿀도 넣어 올게요.”
천진한 척 웃으면, 당신은 피식 한숨 같은 웃음을 흘린다. 나는 괜스레 그 웃음에 기뻐져서 정말 소리내어 웃는다. 어두운 방, 촛불과 달빛만 가득한 공간. 당신의 곁에서는 부드럽고 포근한 온기의 향이 나고, 나는 때때로, 이 공간 자체를 행복으로 감각한다.
당신의 온기가 주는 촉각이, 나의 행복인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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